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이 터진 그날.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기에 쉽게 잊을 순 없다. [여자들의 피난소]는 그날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픽션이지만 사실 큰 틀은 논픽션.

모든 것이 쓸려가고 피난소에 모여있어야 하는 상황. 피난소마다의 상황이 미묘하게 다른데 그 안에서 계층이 나뉘고, 성별로 인한 차별이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현실적이다.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일본은 재난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끼어드니까 결국 사바사가 되어버리더라. 또 남녀차별. 아휴, 이건 읽는 내내 답답했다. 진짜 이럴꺼면 남김없이 다 쓸어가지 그랬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쓰바키하라 후쿠코는 일도 없이 도박만 일삼는, 그러면서 자존심은 산 남편에게 구박받는 50대다. 후쿠코는 문제의 그날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집에 있던 게으른 남편은 죽은줄로만 알았다. 1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기에 내심 그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근데 웬일? 살아서 돌아왔다. 조금 나온 지원금으론 재건에 힘쓰는 것도 부족한데 도박과 사치로 날려버린 한심한 남편 덕분에 속이 터진다. 그러면서 반찬타령까지 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내가 혈압이 다 오른다. 없던 병도 생기게 하는 남편의 활약은 읽어보시라!

백설공주처럼 예쁜 갓난 아이 엄마 우루시야마 도오노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고 시아버지와 큰아주버님과 함께다. 시아버지는 진정으로, 리얼로 꼰대. 애당초 자기 아들은 대학 갔는데... 라며 며느리 면박에 구박을 일삼던 사람. 지진, 해일이 왔을 때 며느리는 집에 없었는데 본인이 아내를 못 챙겨놓고 아내 죽은 걸 며느리 탓 하더라. 게다가 6개월 아이 수유하는데 뭘 가리고 하냐고? 토나온다. 피난소에서 모유수유하는 며느리 배려의 비읍도 못 해 주고, 손자 기저귀 한 번을 못 갈아주는 입만 산 남자다. 도오노 남편이 죽어 나온 위로금을 꿀꺽한건 왜때문인데? 결혼했으면 본인 아들, 딸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시켜주자. 제발.

더 웃긴건 둘째 아들 잃고 미쳤는지 결혼 못 한 노총각 첫째 아들과 결혼하라는 말이 술술 나온다. 옛날엔 그랬다고? 여기에 첫째 아들은 뭐 좋다고 실실거리는건지. 실제로 도오노를 어떻게 해 보겠다고 가설 주택의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땐 이 집은 망했다. 답이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야마노 나기사는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친정엄마와 함께 아등바등 살다 피해를 당했다. 친정엄마는 사망. 아들 마사야와는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뭐라고 해보고자 하지만 이혼에 술집 여자라는 편견으로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아들은 따돌림을 당하고 등교거부를 하는 상황. 편견이 없었으면 마사야는 뭐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똑똑하고 의연한 아이인데. 평범한 생활은 진짜 불가능한가?


이 끔찍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 아파트에 화재가 나거나, 포항 지진처럼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살아있다면. 우리 셋 다 살았다면? 아이와 나만 살았다면? 나만 살았으면? 여러 갈래로 가정해볼 수 있다. [여자들의 피난소]에선 인물 중심으로 풀긴 하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도 제법 잘 다뤄서 꽤 볼만하다. 사실 피난가방 꾸려야하나 뒤적뒤적 검색도 해 봤다. 집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걸 감싸는 사회는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책! 가키야 미우의 다른 작품도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로 [후회병동]은 별로였고 [70세 사망법안, 가결] 괜찮아서 추천해본다.


2019/08/12 - [책] 후회병동 〃
2018/12/21 - [책] 70세 사망법안, 가결 〃


여자들의 피난소 - 10점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왼쪽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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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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