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라는 작가가 뜨고 있단다.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종이 동물원'이란 표제작으로 동시 수상했다. 한 작품으로 세개의 해외 문학상을 휩쓴 경우는 처음이란다. 엄청 기대하고 봤다.


[종이 동물원]엔 총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페이지수가 제법 된다. 아주 짧은 단편, 어느정도 길이가 있는 중편도 있는데 책이 두툼하다보니 읽는데 시간이 좀 든다. 제일 인상깊은 작품은 표제작이었고 나머지 작품은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어떤 건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켄 리우의 단편은 판타지,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스팀 펑크, 중국 전기 소설 등 여러 장르를 넘다보니 나랑 안 맞는 작품은 도무지 입력이 안 됐다. 솔직히 몇 작품은 멍하니 책장만 넘겼다. '까만건 글씨고, 하얀건 배경지지......'


'종이 동물원(The Paper Menagerie)'은 여기 실린 작품 중 짧은 단편에 속했는데 그 안에 기승전결이 뚜렷했고, 환상적이었으며 따뜻함이 녹아있어 단연 최고였다. 이 짧은 단편이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 환상 문학 상을 석권했다니 놀랍기도 했고 그럴만하다 싶기도 했다.

'천생연분(The Perfect Match)'은 인공지능에 의한 지배. 가까운 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게 봤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Good Hunting)'이란 작품은 바로 얼마 전 다녀온 홍콩이 배경도시로 나와서 내용은 별로였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봤다.

'상태 변화(State Change)'는 각얼음이 영혼인 주인공의 이야기. 사람들이 모두 물체화된 자신의 영혼을 곁에 두고 산다는 설정이다. 각얼음이 녹아 없어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애틋했다.

'파자점술사(The Literomancer)'는 대만의 228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대만 여행을 하며 어렴풋 알고 있었던 내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했던 이야기. 꼭 그랬어야 했냐!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The Bookmaking Habits of Select Species)'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여기서부터 이거 나랑 안 맞는 책이라는 느낌을 줬던 작품이다.

'시뮬라크럼(Simulacrum)'에 나오는 아빠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쓰레기. 딸의 시뮬라크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레귤러(The Regular)'는 분량이 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인데 의외로 다른 작품에 비해 기억에 많이 남지 않는다. 감정을 조절하는 레귤레이터라는 장치가 매력적이었는데 한 달 쯤 지나니 그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됐지? 기억이 안난다.

'파(波, The Waves)'와 '모노노아와레(Mononoaware)'는 내용이 지구를 벗어나버린다. 인간의 몸이 아니게되는 모습에서 기이함이 느껴졌다. 말만 그럴듯하게 해놓곤 결국 우주선에 다 탈 수 없었다는 씁쓸함, 나를 희생해서 망가진 우주선을 고치고 사라져버리는 신파는 이 우주 이야기에 인간적인 점을 더해줬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A Brief History Of The Trans­Pacific Tunnel)' 내용 괜찮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터널을 파는 광부의 이야기인데 지하세계에 익숙해져버린 그가 안타까우면서도 뭐가 옳고 그른지, 마지막에 기념비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없애버리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송사와 원숭이 왕(The Litigation Master And The Monkey King)'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나온다. 지 혼자 원숭이 왕이랑 이야기하면서 북치고 장구치고. 근데 제일 제정신인 것 같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다소 끔찍한 부분이 나온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The Man Who Ended History: A Documentary)'는 한국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과거로 돌아가 전지적 시점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그건 딱 한 번 가능하다. 한 번 시간여행을 하면 그 과거는 지워진다. 731부대의 만행 때문에 기가 딸린다. 얘네의 미친 짓을 내 눈으로 직접, 거짓없이 보고왔음에도 현실에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게 화가나는 작품이다.


켄 리우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뿌리 때문인지 중국의 역사, 곁들여 한국, 홍콩, 대만, 일본의 역사적인 내용을 많이 다룬다. 단편소설인데도 무게감이 있다. 그 쪽을 좋아한다면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몇 작품 빼곤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종이 동물원]이다.


여러 SF형식 중 나랑 안 맞는 장르가 있었기 때문에 후속작을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만 나름 신선했다.


종이 동물원 - 10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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