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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까먹지만 않으면 오복이랑 외출할 때 꼭 챙기는 것이 연필이나 색연필이에요. 어쩌면 다른 장난감은 필요 없을지도. 펜만 있으면 종이 구하는건 쉽더라고요. ㅋㅋㅋ 오복이에겐 꼭 백지가 아니라도 OK라서요. 그림을 그리느냐? 아니죠. 숫자를 씁니다. 주구장창 숫자만 씁니다.


대만 까오슝에서도 넘치는 오복이의 숫자사랑. 공항 나오자마자 고객의 소리 같은 종이를 하나 챙기더니 (몇 장 챙겼는데 뭐 하러 그러냐고 해서 갖다놓았어요. ㅋㅋ) 거기에 숫자를 막 쓰기 시작하는거예요. 지하철 타고 가면서도 그러고 있으니 옆자리 앉은 아주머니께서 자꾸 쳐다보셨어요. ㅋㅋ


숫자가 보이면 멈춰서 뭘 자꾸 적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하철 내려서도, 길가다가도 냅다 앉아서 끄적끄적. 까오슝 여행 첫 날, 더운데 캐리어끌고 호텔 체크인 하러가면서 오복이 숫자쓰는거 챙기느라 힘들었습니다. ㅋㅋㅋㅋㅋ


까오슝 돌아다니면서 밀크티 산다고 나오는거 기다리고 있음 그 앞에 명함을 달래요. 명함 뒷면에 메뉴랑 가격 나와있는거 보곤 저더러 폰을 달래서 그걸 또 다 더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입간판에 가격 적힌 것 보면서 무슨 숫자 있나 맞추기놀이 하고. ㅋㅋㅋ


근데 이렇게 잔뜩 써놓고 막상 챙기진 않아요. ㅋㅋㅋ 그래서 전 안 볼 때 슬쩍 버리는게 일입니다. 보고 있으면 못 버리게 해요. ㅋㅋㅋㅋ 매일 저녁 호텔에서 그날의 숫자가 쓰여진 종이들을 버리곤 했어요. 유치원 하원 가방에도 숫자 종이들이 늘 들어있어 처리하기 바빴는데 여행와서까지 엄마의 운명이란. ㅋㅋㅋ


오복이의 숫자사랑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습니다만 한편으론 엄마는 수포자인데 얜 나중에 얼마나 잘 할까 싶고. ㅋㅋㅋ 다른 장난감보다 저렴한 유지비에 흡족할 때도 있어요. ㅋㅋㅋㅋㅋㅋ


까오슝 3박 4일 여행 중 서점을 세 번 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책도 세 권 샀죠. ㅋㅋㅋ 하나는 1부터 100까지 알려주는 수 동화책이었는데 나머지는 워크북이었어요. 계속 워크북만 보고 있어서 다른 것도 사자고 해서 고른게 수 동화책이라니. 못말립니다.


그래도 원하는걸 사 주고 저는 잠깐의 평화를 얻으니 다행입니다. ㅋㅋ 엄마와 아들 단 둘의 해외여행에서는 각자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거든요.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차선과 차차선을 고려해야 하고 길을 모르니까 구글맵을 늘 살펴야 하거든요. 현금을 계속 쓰니까 돈 관리도 해야하고요. 그 시간을 만드는게 펜과 종이.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건 웃픈 사연인데요. 오복이는 평소 사진 찍는 걸 안 좋아 해요. 카메라를 안 보죠. 보라고 하면 눈동자가 허공으로 굴러가요. 그래서 정면 샷이 거의 없고 인생샷 이딴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죠. 허나 몇 개 건진 정면의 자연스러운 샷은 오복이가 먼저 찍어달라고 한 건데요. 모두 새 책과 함께였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아래와 같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잇!


이 숫자사랑, 학교가서도 꼭 유지되길. 지금의 엄마는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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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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