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의 레퀴엠 - 10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일본 책은 제목을 보고 갸우뚱 할 때가 많다. 발 번역인가 하고 보면 한문이랑 안 친한 내 탓이구나 싶다. 대표적인 책을 꼽아보면 [금색기계], [환색에도력], [구제의 게임] 그리고 [은수의 레퀴엠]이다. 사전 정보가 없거나 책을 읽은 후가 아니면 상상하기가 어렵다. (나만 그런가?)

[은수의 레퀴엠]을 처음 봤을 때 은수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원제, 일본어로는 [恩讐の鎭魂曲]. 레퀴엠은 그렇다 치고 은수가 함정이었는데 은혜와 원한 또는 사랑과 미움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걸 알고 봐야 내용이 확 와닿는다.


이 책은 [추억의 야상곡]을 읽고 포스팅하기 위해 책 정보 복사하러 알라딘에 들어갔다가 알게 됐다. 세상에!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가 주인공인 시리즈물이었다. 어쩐지 어릴 때 저지른 사건에 뭔가 더 있을 것 같더라. 어디선가 칼맞고 입원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추억의 야상곡]이 두 번째였고 [은수의 레퀴엠]은 세 번째. 순서가 엉망이 되긴 했다만 이왕 보기 시작했으니 첫 번째인 [속죄의 소나타]도 볼 예정이다.

사실 첫 장을 읽고 기분이 나빴다. 왜 하필 일본 작가가 이걸 건든건지 짜증이 확 났다. 누가봐도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의 오래된 모델을 한국이 사서 불법 증축한 배 블루오션호. 한국을 출발한 이 배는 과적으로, 평형수 조작으로 결국 침몰한다. 실종자, 사망자가 속출하는데 선장과 선원들은 보트를 타고 탈출한다.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분노할거다. 여기서 한 남자가 살겠다고 모르는 여자가 이미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무력으로 뺏어서 살아나는데 여자가 한국인이었음. 아우. 더 읽지 못했을 거다.

미코시바 레이지가 블루오션호 침몰사건을 다루는 건 아니다. 그 이야긴 후반부에 나오니까 잠시 접어두게 된다. 미코시가 의료소년원에 있을 때 본인을 갱생시켜준 은인 이나미 다케오가 살인을 저질렀단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하고 그의 변호사가 되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다.

이나미 다케오는 심지가 올곧은 사람으로 고지식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사건이 있었을 땐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다. 미코시바 레이지를 속죄하게 만들고 훌륭한 변호사로 만들어낸 양반이 살인이라니. 이해할 순 없지만 본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는 상황. 미코시바 레이지로서는 빡 칠 수밖에 없다.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특유의 집요함으로 백락원을 이 잡듯 뒤지고, 거미줄처럼 이어진 인물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눈물이 났다. 와. 추리소설 읽다가 눈물이라니. 지금은 정확히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난 건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건든다. 세월호를 빗댄 블루오션호, 희생된 가오리, 부모의 마음, 백락원의 일상적인 노인 학대, 치매노인의 본능적 두려움, 미코시바의 최선, 이나미의 고집, 진심 이 모든 게 켜켜이 쌓여 툭 건들인 것 같다.

[은수의 레퀴엠]은 전작보다 답답하고 무거운 내용이었지만 훨씬 볼만한 책이었다.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중 한 권을 뽑으라면 아마 이걸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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